10월1일에 서울사회연대경제돌봄네트워크(이하 '서사봄넷') 창립식 및 기념 포럼을 공동주관하였습니다.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치러진 행사 현장에 120여 명 정도 오셨고 줌으로도 30 명 참여했다니 150여 명 정도가 행사에 함께 한 셈입니다. 불과 한 달도 안 된 짧은 준비시간으로, 성공적인 서사봄넷의 출발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모두가 힘을 합하여, 협동을 통해 결과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서울협은 지난 5월 경부터 가칭 '서사봄넷 추진단'에 참여하고 있다고 이사회에서 보고드린 바 있습니다. 과거 서울광역돌봄추진위원회 ('광추위') 멤버들이 주축이 된 서사봄넷 추진단원들이 함께 협동과 연대의 방식으로 이번 포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150 여 명이 3시간 넘는 행사 중 이탈 없이 큰 관심을 갖고 참석한 것, 열 명이나 되는 돌봄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말하게 한 것, 회의실과 먹거리, 기념품, 유툽 송출, 자료집 등 회의 전반을 차질 없이 진행한 것 등등, 어느 한 기관이 단독으로 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일을 해낸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 예를 들어 접수대 담당했던 분들조차 너무 완벽했더랍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심성의껏 열중해주셔서,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열심히 방명록을 쓰게 하고 명찰과 이름표를 배부하고 간식과 음료를 안내했습니다. 작은 예산임에도 여러 명의 기사와 영상 장비가 동원되어 행사장 가운데 떡 버티고 있으니 정말 폼이 났지요. 여러 현장의 돌봄기관들을 대표한 Speaker들은 또 얼마나 빵빵하고 다채로웠으며 한 마디 한 마디 놓칠 말이 없었는지...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서울협의회에는 '미션 중심 조직'을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 기능을 해야한다는 필요와 계획이 있었고 서사봄넷 추진단 다른 분들에겐 서울 돌봄 네트워크를 복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미션)'이 있었지요. 그 사명감을 중심으로 모두가 리더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민동세, 인정현, 김연아, 유리, 고은주, 이종환, 그리고 저까지.
참여자 중 한 사람은 포럼이 끝난 저녁, 이렇게 썼습니다.
"뒷풀이 마치고 갑니다. 우리 처음부터 원팀이었나 봅니다. 맏형으로 언덕이 되어주신 000, 늘 우리의 속을 채워준 김00 님, 준비에 준비를 더하며 이끌어 준 인00 이사장님, 보이지 않는 존재감으로 가능하게 만든 고00 이사장님, 마지막 디테일을 완성시켜 준 이00 센터장님 그리고 처음과 끝을 기록하고 몸빵으로 보테준 유0 샘까지... 결론은!
서사봄넷이 답이다^^"
또 다른 이는,
"자리에 앉아서는 발표내용에 벅차고 앞에 나가서는 가득 메운 동료들이 벅차고. 시작과 끝에는 찰떡같은 호흡이 벅찼던 하루였습니다.
서사봄넷이 답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했을까요?
첫째, 특정인의 욕망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 그런데 그게 지금 내가 몸담아 하고 있는 일의 성공과 밀접히 닿아 있기도 한, 그런 일을 공동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보수의 지급 여부나 다과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지요. 어쩌면 보수가 없어서 더 큰 가치를 느꼈을 수도 있었다고 할까요?
둘째 지시, 복종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편의 상 리더를 뽑았지만 팀원들은 자율적이고 수평적 관계였습니다. 필요한 일이 나열되었고 각자가 자신의 역량, 사정과 형편에 따라 나누어 맡았습니다. 내 일과 네 일의 양을 비교하거나 중요도를 따지지 않는 성숙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사정 상 준비 초반에 많이 하지 못한 사람은, 사정이 허락했을 때 기여하려 애썼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만든 동인은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나 사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션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모였으며, 수평적으로 팀을 운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서울협 입장에서만 보자면 우선 서울협과 같이 행정 대응적 조직 형태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있었습니다. 행정 대응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마침 사회연대경제에 비우호적인 행정이 들어서니 조직 필요성 자체가 없어진 것이죠. 이 와중에 언젠가 때가 올 테니 휴면 상태로 기다리자는 주장, 현재 국면에서는 지역 조직보다 업종연합회가 필요하다는 주장 등이 나왔는데 제 귀에는 둘 다 패배주의적 주장으로 들렸어요. 물론, 필요성이 다한 조직이더라도 '내' 조직이니 온존시키자는 입장도 맞지 않고요. 그래서 대신 서울협은 새로운 미션 중심 조직의 탄생을 위한 모태, 터전 같은 게 되어야 한다고 기조를 설정한 바 있습니다. (24년 사업기조)
24년 서울협 총회 자료에서 인용
이 때 마침 장종익 교수님의 미션 중심 시민연대 사회경제 조직론을 접했습니다.
"아, 이게 길이 될 수 있겠구나."
이 개념을 기초로 마침 그 해 가을에 열린 미래포럼에서 광역협의회의 미래 모습을 주제로 담았습니다. 성공적 네트워크 조직이라 평가되는 광진, 대구, 무한상사, 강원곳간, 노원돌봄, 김포상생연대, 경기햇빛발전연합 등을 분석하면서,
1) 미션 중심 2) 구체적 사업모델과 전문가 3) 관계 확보 4) 풍부한 시민사회 토양 5) 그림자 노동을 자임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자원 투입이 공통된 요소임을 추출했으며,서울협은 지역 내 사회연대과제를 촉진시키며 미션을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연대를 모색하고, 업종협의회와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정부 자원을 최대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광역의 과제를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방향을 정립한 것 이상 중요했던 것이 과정을 통해 김연아, 인정현, 박용수 등 진정성 있는 많은 활동가들을 만났으며 이 만남이 이번 포럼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신뢰 관계)
한편 정부지원이 끊기면서 무너져 가고 있던 현장과의 관계를 복원할 겸, 서울시 관련 인맥을 복원할 겸 (대관업무) 이상훈의원과 아침 8시 공부모임인 덕수궁 포럼을 열었습니다. 예산도, 실무를 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이상훈 의원이 다행히 시의회 회의실을 빌려주어 장소는 해결되었지만 매달 주제를 선정하고 강사를, 그것도 무료로 섭외하며 홍보 웹자보를 만들어 뿌리는 한편, 없는 돈으로 새벽에 물과 토스트를 준비했다가 사전 신청한 사람이 안 오면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등 사소하지만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이 포럼을 1년 간 지속한 결과 이상훈, 오금란, 이민옥 의원을 깊이 알게되었고 서울시의회와 같은 공공기관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어 오늘 돌봄 포럼으로 이어졌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덕수궁 포럼이 어려운 시기에 서울협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자평합니다.
이번에 실질적으로 예산을 지원한 서사경센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년 전 구 서울협동조합지원센터와 서사경센터를 통합한 후 미담장학회와 서강대 콘소시움이 서사경 센터 운영을 수탁했는데 여기 운영이 수탁 초기이기도 했겠지만 이전 수탁 기관이었던 저희가 보기에 미흡했습니다. 이 점을 이상훈의원이 24년 서울시 행정감사를 통해 지적했고 이로 인해 시청 공정경제과는 현장 당사자인 서울협의 존재를 일부 인지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 이후 센터와 서울협 간 몇몇 협력 활동이 진행되었고 그런 일들이 겹쳐져 이번 포럼에 서사경 센터 예산을 전용 지원하는 민-관 협력의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고 저는 평가합니다 (ㅎㅎ 순전히 저의 뇌피셜~). 중요한 점은 대관업무가 가장 어려워진 '추운 겨울'에 대관업무를 시작했고 (물론 총체적으로 볼 때 성과는 지지부진했지만), 덕분에 날씨가 풀렸을 때 뭔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이 외에도 현장을 연결하고 공적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자치구센터장 연대회의를 접촉하고 연대활동을 도모했습니다. 이 활동 덕분에 자치구 센터와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었고 그게 또 이번 포럼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공적 자원을 활용할 요량으로 서울시청 공정경제과장을 만나려 애썼던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올 해 두어 달 전 어쩌다 만남이 성사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생각하지 않게 서사경센터 예산에 대한 의견을 묻더군요. 별 기대 없이 미래도시 서울을 위한 아젠다로서 사회연대경제가 열 통합돌봄포럼을 지원할 것을 제안했는데 마침 새로 부임한 팀장이 이를 적극 반영하면서 이번 포럼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센터의 예산, 즉 서울시 돈을 쓰다 보니 문제점도 생겼습니다. 오백만 원 정도 소액이었는데 서울시는 포럼만 지원할 수 있다 (서사봄넷 출범식엔 예산을 절대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거참... 사실 모든 돈은 기념 포럼에 사용되는 것이어서 결국 출범식과 기념포럼을 나누어 진행하는 방안으로 타협되었고 그로 인해 웹자보, 현수막, 홍보 등등도 다 나눠서 진행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축사, 환영사, 사진촬영 등 행사도 두번씩 했습니다. 전체적으론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게 아마 행정 주도 시, 즉 민간이 정부 예산 의존할 때 발생하는 민간단체의 동형화 문제의 일단면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므로 민간은 여하한 경우에도 운영 상 (재정적) 독립성을 유지해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될 일은 된다."
그렇게 10월 1일 포럼은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이 모든 내용은 서울협의 관점과 활동에서만 기술된 것으로 서사봄넷 출범 이야기 중 극히 일부 입니다. 전체 이야기를 하기엔 제가 적절한 사람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사람이 협동과 연대하여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임팩트 네트워크!), 명확한 미션 중심, 그 미션에 동의하고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한 사람들, 그들 사이에 형성된 신뢰와 관계 (시간!), 수평적 운영, 그리고 실패나 결과를 미리 예단하지 않고 '필요한' 일을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조직/진행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모든 게 합하여 작든 크든 어떤 결과에 이르더라는 작은 사례를 동료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읽으신 것 처럼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우연과 필연이 겹치며 서울지역에서 미션 중심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무엇이든 붙잡을 것이 있다면 그걸 부여잡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 다음은 또 어찌어찌 되겠지요. 그래서 다시 한번 외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