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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덕수궁포럼 후기 (타임뱅크)

한영섭 2024. 4. 29. 16:20
암 치료 후유증으로 난청을 겪고 있는 타임뱅크 코리아 손서락 대표가 수강자들 말을 더 잘 들으려는 듯 귀에 손을 댄 채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열댓명의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일수록 그의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져 한시간 반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지났습니다. 어느덧 7회 차를 맞은 서울협의 덕수궁포럼, 서울시의회 7층 오전 8시 풍경입니다. 

 
평소 봉사활동을 늘 실천하던 칸 박사는, 어느 날 본인이 암에 걸려, 돌봄의 시혜자에서 수혜자로 바뀌면서 일방적 돌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답니다.
일방향의 수혜-시혜 구조 속에서 수혜자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느낌을 갖게 되며, 시혜자들 역시 자신의 봉사 활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수혜자들에게 좌절하거나, 봉사로 저들의 삶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피로를 느끼며 현장을 떠납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부르짖는 속칭 '자유시장경제'란 이름으로 돈은 안되지만 가치 있는 일들에 대해 보상은커녕 배제하고 있으며 '무식하고 게으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세금이 가면 안된다고 하는 극우적인 주장마저 출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시장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타임뱅크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합니다.
 
교통사고로 사지 마비가 되어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없어 외로움으로 하루 빨리 죽고 싶은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그간 다양한 기관을 통해 돌봄의 수혜를 많이 받아왔지만 어떤 봉사도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순 없었답니다. 두 사람에게 꼭 필요한 돌봄 관리사를 구하자니 재정적 어려움도 너무 컸고요. 이 두 사람을 엮어준 것이 타임뱅크였습니다. 사지 마비로 겨우 어깨만 쓸 수 있는 청년이 외로운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뜻한 문안 전화를 겁니다. '엄마'는 청년의 목소리가 좀 잠겨있는 걸 느끼고 "무슨 일 있나?"고 묻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이제 행복하답니다. "나도 남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했는데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받은 시간화폐로 그 청년은 자기에게 필요한 다른 돌봄노동의 댓가를 지불합니다. 이제 그는 조금 떳떳해졌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철학에 근거해서 노동 나눔, 돌봄의 순환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래서 모든 걸 시장화, 화폐경제화하려는 극단적 영리 자본주의 안에 숨 쉴 공간을 만드는 그 꿈을 손서락 대표가 이마에 땀을 맺고 뺨에 홍조를 띄며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시장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사회 안으로 들여오는 운동이 타임뱅크 운동인데, 이렇게 서로 협동해서 만드는 걸  코프로덕션 (Co-Production, 공동생산, 공동협력생산)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결핍과 욕구가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의 결핍과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자산과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이 자산들을 서로 교환할 때 우리의 결핍이 채워지고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다만 분업으로 나누어진 세상만이 유일한 세상인 줄 알고 살며, 불평등 사다리에서 남을 딛고 올라가야 '성공'한다는 생각에 꽉 차 있는 우리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코프로덕션 원리에 의해 복지에서도 전문가와 수혜자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버려졌던 쓸모없는 사람들이 복지의 주체로 나서도록 이끌어주니 행복감이 증대되고 '화폐' 비용은 줄어들게 됩니다. 사회복지사의 다음 말에서 이 효과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용자들과 대화하는 방법이 달라졌어요. 계속 그 분이 뭘 잘하는지 발견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나아가서 그 분의 관계망을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협동조합 세상의 원리 아닙니까? 우리가 말하는 '상호성'이 바로 이 원리 아닙니까?

 

똑똑한 몇 사람의 지도력에 의해 이끌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참여하고 기여하며, 모두가 쓸모를 인정받는 세상, 그 쓸모를 서로 교환하며 살아가는 세상 말 입니다. 저는 강의를 듣고 나서 바로 손대표에게 타임뱅크 코리아의 서울협 회원사 가입을 요청했습니다. 제 제안에 대해 '세상 돈'이 없는 손대표는 난색을 표했지요. 그래서 저는 배운 거 금방 써먹으려고 말씀드렸지요. 서울협 회비는 타임뱅크로 받겠습니다. 손대표는 서울협에 타임뱅크 컨설팅을 해주시면 그걸 타임머니로 계산해서 회비 대신 받겠습니다~ 

어때요? 신규 가입은 이사회 승인사항인데 이사님들, 승인해주실 거죠? 

 

이상 제 7 회 덕수궁포럼 스케치였습니다. 덕수궁 포럼은 앞으로도 쭉~ 이어집니다~